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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말이지요....
수많은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무엇을 살 것인가(혹은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저는 작가의 이름을 많이 활용합니다. 좋은 글을 쓴, 실력 있는 작가의 후속작은 전작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민소영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약사 일을 하면서 글도 쓰시는 분인데,최근에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런 글이 있더군요. 오늘 중고등학교 학부형인 약사님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약사님은 오후근무이신데, 오전에는 뭐 하세요?" 이럴 때는 대강 넘어가 주는 센스. "이런 저런 딴짓해요. ^_^"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동료 약사분의 목소리. "어허, 민약사아~ 솔직하게 말해요오~ 아니잖아~" 눈앞에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의 압박;; 이리저리 내빼려다가 결국 고개를 푹 조아리며 자백했다. "소설 써요. -_-;;;" 이제는 번쩍이는 눈동자들의 압박;; "무슨 소설이요!!" 동료약사분을 슬쩍 돌아보니... ^ㅁ^ / <-알아서 답하라는 미소. 결국 자백. "판타지요. ^^" 잠시 침묵. 이마 뻐근한 압박의 순간이 지나자, 두 분 다 매우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 저는 우리애들한테 판타지 보지 말라고 하는데. ^^;;;;;;" "네, 저도요. 공부 방해된다고;;" "다른 애들은 많이 보는 것 같던데요;; 아하하;;;;;;;;;" "........" .....울었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판타지 소설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 저는 어린 시절 드래곤라자(이영도,1998)를 처음 접하면서 판타지 소설에 빠졌습니다. 그 소설을 읽을 때의 정신적 충격은 지금도 기억나는군요. 마지막 권을 읽고 나서는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에 한참 동안 멍한 상태였지요. 그런 재미와 감동을 찾아 이후 다른 소설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퇴마록(이우혁), 귀환병이야기(이수영), 더로그(홍정훈), 세월의돌(전민희), 카르세아린(임경배) 등등... 국내 판타지소설가로서 제일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또 지금까지도 계속 글을 쓰고 계시는 분들이죠. 퇴마록의 이우혁 씨는 워낙 유명하니 말할 것도 없고, 이영도 씨도 국내 최고(?)의 판타지 작가라고 여겨지는 사람이고, 카르세아린은 현재 많은 양산형 소설에서 채택되는 설정들(드래곤들이 힘은 엄청나게 센 주제에 성격은 유치,찌질하고 괜히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유희'를 다닌다는)을 처음으로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밖에 다른 분들도 중견작가라고 할 만하죠(무협 작가의 경우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들이 상당히 많은 데 비해, 판타지 시장은 국내의 경웅 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으므로 작가 경력이 10년이 안되지만 어쨌든 제일 기니까...). 판타지 소설이 처음 나올 때에는 시장에 출판된 모든 책을 다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지만 대개 만족스러운 편이었죠. 그러다가 고교 3년 동안 참고서 외의 책을 거의 읽지 못하다가 대학 입학 이후 여유가 나서 다시 이것저것 보려고 했는데... 일반 소설도 좋지만 역시 예전에 재밌게 보던 판타지를 찾게 되었죠. 그런데 책이 엄청나게 많아졌더군요. 처음에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읽을 책이 많아졌으니까요. 하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영 아니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대부분의 판타지소설들이 지나치게 가볍고 경박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어째서 이런 수준의 글이 출판사에서 걸러지지 않고 시장에 나오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독자들이 눈이 없어 이런 글이 인기를 끄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취향 차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반면에 매우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반품되거나, 작가 분께서 직업을 바꾸는(아마도 생계 보장이 안될 정도의 판매부수 탓인 듯) 경우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여기저기서 들어 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더군요. 사실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사람들은 무협은 조금 볼 지 몰라도 판타지는 안봅니다. 게다가 사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죠. 그러니 자연히 대여점에서 얼마 안되는 용돈을 써가며 빌려보는 초,중,고등학생이 주 독자층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어린애 수준의 글이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끌어 잘나가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요. 대학생이고 그다지 용돈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술을 안마시고 군것질을 줄이고 옷도 조금만 사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니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은 사서 모을 수 있더군요. 충분히 많이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 저만큼이라도 사서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더군요... 판타지 소설이 '어린애나 보는 것', '공부에 방해되는 해로운 것', '사서 볼 만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면 어떻게 명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런 암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안보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닌 듯하더군요. 일단 현재 무협소설을 보는 어른들은 어렸을 때 무협지를 즐겨 보던 분들입니다. 어렸을 때 보지 않던 사람은 익숙하지 않아서 나이 먹어 보기 시작하기는 힘들겠죠. 그런데 지금 많은 젊은 사람(주로 학생)들이 게임에 익숙하고 판타지 소설에 익숙하니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가져 수입이 생기면 사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중학생 때는 빌려 봤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 사서 보니까... 게다가 지금 어른들이 판타지 소설을 안좋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그런 것이 시험에 안나오는 것이니 학생들의 성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읽지 않기 때문이지요. 판타지문학에 익숙한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를 먹어 기성세대가 될 즈음이면 많은 사람들이 사서 보아 작가들도 먹고 살 만한 수입이 보장되고, 또 나이 먹은 사람들이 독자로 많으니 지금처럼 경박하기만 한 내용이 대세를 이루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작가, 예비작가들이 작품성 있는 판타지문학에 도전할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우리 아버지 세대는 자식을 위해 많이 희생하지만 현재의 신세대는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습니까? 저만 해도 제가 애를 가진다고 해서 제 취미생활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미래의 한국판타지시장의 전망은 매우 밝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다른 장르문학이나 만화, 애니, 게임 등의 비슷한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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